계절 그리고, Uncatchable_



짧은 겨울 그리고 만남.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던 추운 겨울날, 넘어질까봐 종종거리며 걷고 있던 내게 그가 와서 인사를 건넸다.
낯을 가리는 나를 배려했던 것인지 혹은, 그도 낯가림이 심했던건지 모르겠지만 간단한 몇 마디를 나누고는 헤어졌다.
우리의 첫 만남은 그렇게 소리없이 눈이 내리듯 평범하고 차가웠다.
어느 날 그의 노래를 들었다. 집에와서 자려고 누웠는데 문득 그의 노래가 귓가에 맴돌았다.
제목이 뭐였더라. 그 다음 가사는 뭐더라.
궁금했다.
그 노래의 제목, 가사, 그리고 그가.


따뜻한 봄 그리고 솜사탕.
나는 일을 하고 있었고, 그는 공부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생활 패턴이 많이 달랐지만 함께 하는 시간은 나날이 늘어났다.
내리쬐는 햇볕을 피해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솜사탕을 먹었다.
맑은 그 날 새파란 하늘에 구름같았던 솜사탕의 달콤함은 그저 단 설탕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마치 안으로 들어가면 겨울 여신이 살고 있는 나라로 통하는 옷장처럼,
그와 함께 있으면 서울의 한 동네가 아닌, 그 어딘가로 통하는 마법의 장소에 있는 느낌이었다.
그와 함께 할 때면,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었다.


지치는 여름 그리고 핫쵸코.
커피와 탄산수를 싫어하는 나는 핫쵸코를 즐겨 마셨다. 
30도가 훌쩍 넘는 뜨거운 여름, 가만히 있어도 등줄기로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날에도 뜨거운 핫쵸코를 마시는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던 그가 어느덧 카페에서 핫쵸코 두 잔을 시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는 내게 참으로 묘하고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밤새 생각하고 괴로워하고 머뭇거리고 고민하는 것들을
한 순간에 아무 것도,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만들어 버리는 재주가 있었다.
그리고 나의 고뇌와 괴로움의 시간들을 무색하게 만들고, 단단하게 굳혔다고 생각한 내 마음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는 이상한 매력이 있었다. 
나는 그런 그 덕분에 더운 날씨만큼이나 지치고 잔인했던 그 해 여름을 견디고 버틸 수 있었다.


쓰라린 가을 그리고 피노키오.
우리는 사실 알고 있었다. 우리가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그것을 말하는 순간, 그것이 끝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와 그는 서로에게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더 같이 있고 싶어도 얼른 가라고, 목소리가 더 듣고 싶어도 이만 끊자고.
그에게 나는 코가 자라는 거직말쟁이가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겨울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시 겨울 그리고...
그로 가득한 한 해를 보내고 그를 처음 만났던 겨울이 되었지만, 그는 내 곁에 없었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가득한 그의 흔적이 나를 괴롭혔다.
거리에서, 집 앞 벤치에서, 함께 가던 카페에서, 같이 만나던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예전의 그와 함께였지만.
이제 더 이상 나는 그의 어깨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쓸어내 줄 수 없었고, 아무리 바빠도 손톱은 잘라야지 하며 잔소리 할 수 없었고, 담백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웃고 이야기 할 수 없었다.
이번에는 영원할 수 있을 거라는 바보같은 진실을 또 믿어버리고서는 다시 아파하는 내가 밉고,
조금 더 용기내지 못한 그가 싫었다.
다시 만날 수 있을거라는 희망 아닌 허망을가져 보기도 했지만, 

한 동안 붙잡고 있었던 보이지 않는 그의 손을 놓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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