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 Ordinary Purple


6월 27일, 마지막으로 성적 입력을 한 뒤
오늘 처음 내 자리로 돌아왔다.

습관적으로 컴퓨터를 켜고 로그인을 하려는데
나 없는 사이 연구실에서 비번을 바꿔놓았는지
오류가 3번이나 났다.

생각보다 책상 위에 먼저는 없었지만
물티슈로 한번 쓰윽 닦고 의자도 제자리로 되돌려 놓았다.

책상 위의 모든 것들은 내가 두고 간 그 모습 그대로였다.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파일과 책들, 그리고 텀블러에 메모지까지
어느 한 곳 흐트러짐 없이 그대로이다.

연구실 밖으로는 여전히 공사중이어서
인부들의 외침과 기계 소음이 들려온다.
언제쯤 마음껏 환기를 시킬 수 있을까.



어제 영화 '혹성탈출'을 보면서 문득
내가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오기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떠올랐다.

수업 시간 외의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던 이 자리에 앉아 있으면
뚜렷하게 들려오는 동물들의 울음소리가 못 견디게 싫었다.

같은 층에 있는 '중소형 동물 실험실'에서 밤낮으로 들리는
개와 돼지의 울음소리는 나를 너무 괴롭게 만들었다.
물론 그 목적과 의미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소리를 듣고 있을 때에는 같은 인간인 나조차도 잔인하게 느껴졌다.



내가 이 곳으로 다시 돌아오기 싫었던 가장 큰 이유는
동물들의 울음소리도, 공사장의 시끄러운 소음도 아닌
바로 사람 때문이었다.

모두들 자신만의 공간 속에서
다른 이와 소통하려고 하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마음의 문을 닫는 이들을 보면서

어느 덧 나도 그렇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끔찍한 이 곳에서 얼른 도망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지금 다시 이 곳에 있다.
아직까진 동물들의 괴음은 들리지 않지만
오히려 조용한게 더욱 낯설게 느껴지는 이 곳으로 돌아왔다.

나는 어디로든 도망가고 싶었지만
도망갈 곳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나에겐 그렇게 할 자신도, 용기도 없었다.

다시는 오지 않겠다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미련없이 문을 닫고 나왔지만
사실, 내 물건들을 고스란히 책상 위에 놔둔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리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나보다.  




혹성탈출의 시저처럼
나도
진짜 나의 집, 나의 자리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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