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댁. Ordinary Purple



며칠 전 생일이었던 황댁에게 오랜만에 축하 문자를 보낸 계기로
요 근래 황댁과의 연락이 드문드문 있었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로 간간히(1년에 한번 정도) 안부문자를 보내기는 했지만
워낙 공통분모가 없는지라 연락할 기회도, 볼 기회도 딱히 없었다.

그런 황댁이 추석이라고 인사겸해서 카톡으로 이런저런 말을 걸더니
어제 밤 무려 7번이나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영화를 보고 있던지라 방해받고 싶지 않아 상황을 설명했는데도 불구하고
연신 울려대는 전화에 살짝 짜증이 나기도 했다.

역시, 황댁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아침, 약속 장소로 가면서 황댁의 연락을 무시한 게 마음에 걸려 문자 한 통을 넣었더니
역시나 바로 전화가 왔다.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인사나 하고 끊어야겠다는 마음에 받았는데
통화 후 기록을 보니 무려 30분이나 통화를 했더라.

역시, 황댁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아주 오랜만에 서로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야기했다.
대화의 주제는 역시나 황댁답게 연애와 이별이었는데
지하철 안에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30분 동안 
나는 황댁에게 나의 속내를 드러내 버렸다.

황댁은 내가 이야기 하는 모든 것을 이미 자신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실제로 잘 알고 있기도 했고, 잘 알 것만 같은 느낌이다.)
나에게 조언과 충고를 하기 시작했고
더불어, 내 한마디 한마디가 끝날 때마다 
그 특유의 깔깔거림으로 미친 사람마냥 목청 높여 웃었다.



황댁은 처음부터 그랬다.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그는 그의 속내를 모두 다 드러내고 나의 속내를 캐내었다.
한창 이별에 힘들어하는 모습과 30여년의 그의 인생을
만난지 만 하루밖에 되지 않은 나에게 모두 보여주었다.

낯을 심하게 가리는 나로서는 그런 황댁이 부담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왠지 모를 편안함이 느껴졌었는데
아마 이 이유 모를 편안함은,
우리가 다시는 만나지 않을 사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 같다.


아무튼, 그런 황댁이었다.
지나치게 심할 정도로 사랑에 집착하고 그 누구와도 벽이 없는 사람.

그런 그가 오늘 나에게 해준
사랑에 관한 이런저런 조언을 들으며 '응, 맞는 말이야'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찰나,
생각났다.



그가 내게 좋아한다고 고백했던 사실이.



자신의 인생에서 단 3일을 만난 여자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이로부터
사랑에 관한 조언과 충고를 듣고 있자니

내 아이폰의 배터리가 조금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황댁은,
여전히
어쩔 수 없는
황댁이었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